오늘보다

  • 기획
  • 2016/03 제14호

제약산업의 거짓말

착한 의약품은 가능한가?

  • 김동근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글리벡을 아시나요? : 특허권과 생명권

2001년 6월 글리벡이 식약청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혈액암 치료제인 이 약은 승인과 동시에 커다란 이슈가 되었습니다. 먹는 약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게다가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약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글리벡은 또 다른 이유로 커다란 이슈가 됩니다. 제조사인 노바티스가 글리벡 한 알의 가격을 2만 5000원으로 책정했기 때문이지요. 하루 4~8알을 복용해야하기 때문에 약값만 한 달에 300~600만 원에 이릅니다. 백혈병 환자 대부분이 치료제를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당시 글리벡 한 알을 만드는데 드는 원가는 최대 760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약가가 원가의 30배가 넘는데요, 이러한 가격 책정이 가능한 것은 글리벡에 대한 특허권을 노바티스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노바티스만이 글리벡을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고, 따라서 노바티스가 아무리 높은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돈 있는 사람은 사 먹고 돈이 없으면 죽으라는 것이 노바티스의 입장이었습니다.

노바티스는 ‘글리벡의 개발 원가는 미국 평균 신약 개발 비용 8억 달러(약 1조 원)에 준한다’면서 높은 약가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 뿐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신약 개발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신약에 대한 특허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높은 약가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백혈병 환자들과 사회단체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약이 눈앞에 있음에도 죽어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노바티스에 약가 인하를 촉구합니다. 글리벡은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신약에 대한 특허권’과 ‘생명에 직결되는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 사이의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2003년 노바티스 점거 농성 (출처:글리벡공대위, glivec.jinbo.net)
 

부풀려진 신약 개발 비용

특허권과 생명권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8억 달러가 든다는 노바티스의 주장을 검토해볼까요? 사실 막대한 신약 개발 비용은 노바티스 뿐 아니라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8억 달러라는 수치는 미국의 터프츠센터(Tufts Center)가 2003년 발표한 보고서에 근거한 것인데요, 심지어 터프츠센터는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26억 달러(약 3조 원)가 든다고 주장합니다. 1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 보고서들은 연구보고서로서 기본을 지켜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뢰하기 힘듭니다.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를 모두 제약회사들로부터 제공받았을 뿐 아니라 데이터를 다른 연구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채 연구결과만을 발표했기 때문이지요.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간 신약들만을 골라서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 또한 비판받았습니다. 결정적으로 터프츠센터는 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초국적 제약회사들로부터 지원받고 있습니다. 

실제 터프츠센터의 연구 결과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2014년 보고서가 발표된 후 워싱턴포스트는 연구 결과가 과장되었다는 논평을 내놓았고, 공익시민센터(Public Citizen)라는 미국의 사회단체는 실제 신약 개발 비용이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요, 노바티스 역시 글리벡으로 인한 논란이 발생했을 당시 개발의 실제 비용이 얼마냐는 물음에 대해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터프츠 보고서를 반복적으로 인용하기만 했습니다.
 

정말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할까?

더 놀라운 것은 제약회사가 수많은 위험부담을 안고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 허구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파클리탁셀이라는 항암제가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초국적 제약회사 BMS가 개발했다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실제로는 미국 시민의 세금으로 개발된 것입니다.

신약 개발에는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물질을 검토해서 치료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아내고, 해당 물질에서 실제 치료 효과가 있는 성분을 찾아내고, 해당 성분이 어떤 원리로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지 밝히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신약 개발의 초기 단계가 끝납니다. 

그 다음 치료 효과가 있는 성분을 실제로 추출해서 동물실험을 거친 후,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3단계에 걸쳐 진행하게 됩니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보통 5000~1만 개의 물질이 검토된다고 합니다.

파클리탁셀은 미국주목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 탁솔이라는 성분을 약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천 개의 식물 성분이 검토되었는데요, 이걸 수행한 것은 BMS가 아니라 미국 국립암연구소입니다. 미국주목나무의 껍질에서 탁솔을 찾아내는 과정, 탁솔의 치료 효과를 밝혀내는 과정, 동물실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까지도 모두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수행했고, 그 과정에 2억 달러에 육박하는 세금이 투입됩니다. BMS는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3단계 임상 시험에 일부 도움을 준 것을 대가로 파클리탁셀에 대한 특허를 헐값에 취득했습니다. 반면 2003년 한 해 파클리탁셀의 매출액은 90억 달러에 달했구요.

2000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가장 많이 팔린 신약 5개의 개발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개발 과정의 85퍼센트는 공공기관 혹은 학술기관이 수행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제약회사들은 연구가 대부분 진행되어 ‘신약’으로 개발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후에 끼어들어 나머지 15퍼센트를 진행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커다란 위험을 안고 신약을 개발해서 인류의 건강에 기여한다’는 제약업계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의약품 특허권 : 제약회사의 이윤 확대 프로젝트

이제 글리벡 사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특허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특허권은 새로운 기술이나 물질을 발명한 특허권자에게 그 독점적 사용권을 일정 기간 동안 부여한다는 개념입니다. 특허권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합당한 권리처럼 인식되지만, 사실은 굉장히 특수하고 역사적인, 20세기 후반 급격히 강화된 제도입니다.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은 1986년 출범한 다자간 무역협상(우루과이라운드)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출범 6개월 전에 화이자, 머크와 같은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지적재산권협의회라는 임의기구를 만들고 자체적으로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라는 지적재산권 보호기준을 설정하는데요, 그 후 미국·일본·유럽 정부에 적극적인 로비를 펼쳐 의약품에 대한 강화된 특허권을 세계적으로 관철시킵니다. 

우루과이라운드의 결과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의약품에 대한 특허라는 개념이 처음 국제적으로 도입되었으므로 그 역사는 사실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이지요. 우루과이라운드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상당수의 나라에는 특허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1986년까지 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던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서 50개국에 달했습니다. 

초국적 제약회사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미국·유럽·일본 등 강대국들은 WTO 체제 이후에도 자유무역협정(FTA)를 매개로 한 TRIPs+,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통해 특허권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면서 초국적 제약회사들에게 더 많은 이윤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특허권이 얼마나 강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민주적인 논의 과정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의약품에 대한 독점 기간은 1980년에서 2000년 사이 2배나 증가했고, 지금도 계속 강화되고 있습니다. 독점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특허 기간 자체를 연장하고, 특허 요건을 완화하고, 특허 대상을 확대하고, 신약 자체가 아니라 임상 시험 자료에 대한 독점권을 주는 등 각종 이상한 방법들이 동원됩니다. 

신약 성분 대신 의약품의 제형·모양·색깔에 대한 특허를 부여하는가 하면, 적용되는 증상이 추가되었다고 특허를 새롭게 부여하는(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에 대한 특허를 월경전긴장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병에 효과가 있다고 새롭게 특허를 부여한 사례) 것과 같은 방법이지요.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이 실패 확률이 높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위험 산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과도한 독점권을 등에 업고 19퍼센트의 평균이윤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동차산업의 3배를 넘어서는 이윤율입니다.


특허를 넘어, 민중 건강권을 향해

정리하자면, 특허권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공평하고 합리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또한 신약의 가격은 시장 원리, 사회적 가치, 공공성의 원리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최대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가격, 즉 각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가격으로 정해집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특허권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초국적 제약기업 이윤율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의약품의 존재 이유가 제약회사의 이윤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무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에 맞선 투쟁 역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글리벡을 둘러싼 한국에서의 투쟁,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접근권을 쟁취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 투쟁, 인도의 진보적 의약품 특허제도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 등이 그 사례들입니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에 맞서 의약품에 대한 민중의 접근권을 확대하고, 자본을 위해 특허권을 끝도 없이 강화하는 국제질서를 바꾸어 내기 위한 투쟁들이 우리가 주목하고 함께 해야 할 길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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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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