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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경제
  • 2016/11 제22호

진단도 해법도 틀렸다!

20대 국회 예산안 · 경제 법안 분석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대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끝나고, 정부 예산안과 법률안 논의가 시작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여야의 공방이 한참이라 예산안이나 법률안이 진지하게 논의되긴 어려워 보인다. 매번 그러하듯 회기 막바지에 여러 법안과 예산안이 여야의 ‘빅딜’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의 경제 관련 법안과 예산안을 노동자 관점에서 분석해 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지배계급이 현재의 장기 경제 침체를 실제로 어떻게 견뎌내려 하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과 새누리당이 ‘경제활성화법’이라 부르는 각종 규제개혁 법안들은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공급측 경제학이론을 충실히 따른다. 이들의 주장은 현재의 재벌이 경쟁력을 더 키워야 일자리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예산? 기업 퍼주기 예산!

정부는 2017년 예산안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일자리 예산”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정부가 직접 고용을 늘린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 일자리 예산은 청년 창업 지원, 청년 선호 기업 지원, 학생 인턴 채용 기업 지원, 중장년 인턴 채용 기업 지원, 시간선택제 도입 기업 지원 등 기업 지원을 핵심으로 한다. 일자리 예산 중에는 청년들이 게임회사를 선호하니, 청년 취업 확대를 위해 게임회사를 지원(635억 원)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정부의 지원금이 실제 고용 효과를 발휘하려면 노동조건이 나빠 노동자를 구하지 못하는 기업이 지원금을 임금인상에 쓸 수 있어야 한다. 또 추가 인력이 필요 없는 기업이 전체 생산성을 낮춰서라도 지원금으로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일은 드물다. 통상 고용 관련 지원금은 기업이 부담하는 인건비를 낮추는 데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월 130만 원을 임금으로 주던 기업이 지원금 30만 원을 받는다고 해서 임금을 160만  원으로 올리진 않는다. 자신의 인건비 부담액을 13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낮출 뿐이다. 낮은 임금으로 생활이 불가능해 다른 일자리를 찾는 청년 노동자가 이런 일자리에 취업할 리 없다. 추가 고용이 필요 없는 기업은 기존 노동자를 줄인 후 정부 지원금을 받아 신규 채용을 늘리는 꼼수로 인건비를 줄인다. 정부 보고서들도 고용 관련 기업 지원금의 효과에 대해서는 확실한 실증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예산만이 아니라 예산 전체를 봐도 경제 침체를 벗어나는 재정 정책으로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경제위기 시기 정부는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기 활성화를 도모하곤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재정의 건전성에만 집착해 오히려 정부 지출 비중을 줄였다. 국민계정의 정부계정을 보면, 일반정부와 공공기관 전체의 총지출은 2012년 GDP 대비 48퍼센트에서 2015년 말 45퍼센트로 감소했다. 2017년 예산도 그다지 증가하지 않아 이 비율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이 와중에도 소위 창조경제의 일환인 각종 기업 지원금은 늘어 그 실체도 모호한 지역전략사업에만 3조 원이 넘는 예산이 배정되었다.

부자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누진세가 높아진 것도 아니니, 결국 정부 예산은 서민의 세금을 늘려 기업과 부자를 돕는 것 이상이 아닌 셈이다. 경제 침체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침체로 인한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경제활성화법의 기만

새누리당이 경제활성화법이라 부르는 법안은 노동개혁법, 규제프리존법, 규제개혁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이다.

노동개혁법은 파견근로 허용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통상임금 범위의 시행령 위임, 특별연장근로 합법화 등으로 말 그대로 고용과 임금을 더 유연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지역전략산업을 정해 특정 지역에서 산업 관련 규제를 초법적으로 해제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이다. 의료나 교육 같은 공공서비스부터 골프장이나 스키장 같은 환경파괴 시설까지 예외가 없다. 규제개혁특별법은 행정부와 국회가 규제를 ‘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 방식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대신 ‘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 방식만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경우 규제할 수 있는 대상이 현격하게 감소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보건 분야부터 교육·복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공서비스 영역에 대한 자본 투자 제한을 없애고 심지어 민영화가 가능하도록 허용한다.

여당의 경제활성화법이 통과되면 혜택이 재벌에게 집중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규제프리존에 대규모 자본 투자를 할 수 있는 것도 재벌이고, 서비스산업발전법이 허용하는 민영화 영역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것도 관련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재벌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건 정부와 여당이 대규모 규제 해제를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다. 보통은 살금살금 알듯 모를듯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적자 상태에 빠진 재벌 자본

바로 재벌들의 상태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하는 대규모기업집단 경영 현황을 보면, 2015년 말에 그룹 전체가 적자 상태에 빠진 그룹이 16개나 된다. 2010년에는 적자 상태의 그룹이 12개였다. 반면 순익이 1조 원 이상인 재벌 그룹은 2010년 9개에서 2015년에 6개로 크게 줄었다. 이 기간 삼성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재벌의 순익 합계는 23조 원에서 12조 원으로 반토막났다.

새누리당의 규제 개혁 법안은 이들 재벌이 국내에서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사업을 열어주는 게 핵심이다. 세계경제 침체와 재벌의 수출 경쟁력을 고려할 때 사실 수출로 이익을 계속 낼 수 있는 기업은 이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상위 재벌을 제외하면 한국 재벌이 1997년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들 재벌의 곳간을 채워주기 위해 공공성이나 서민 생활은 내동이 쳐도 괜찮다는 태도다.
 

노동자의 해법은 어디에

그렇다면 민주당의 소위 경제민주화법은 대안일까? 가만히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민주당 경제민주화법은 감사의 독립성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를 통한 주주의 경영 개입, 집단소송·징벌적손해배상을 통한 소비자 보호,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통한 계열사 부당거래 감시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거래하면,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주주의 공정한 권리가 주주 행동주의와 단기 수익 중심의 금융화로 발전하고, 소비자 소송 제도의 확대가 비생산적인 거대한 법률시장 확대로 이어진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루에 나라 몇 개를 날려버릴 만한 돈을 굴리는 월스트리트의 펀드 매니저와 금융, 의료, 정보통신 등에서 소유권 보호를 위해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법률가들은 신자유주의의 상징 중 하나다. 시장 제도의 개혁은 자본주의 생산의 모순을 잠시 완화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순 없다.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좀처럼 찾기 힘든 지금, 답답하지만 당장은 노동자들 자신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조직화만이 잠정적 대안일 수밖에 없다. 여당과 야당의 경제 법안에는 어디에도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 할 권리’를 확대하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투쟁하는 것만이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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