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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 제36호

시혜와 동정을 넘어 권리의 시대로

중증장애인들의 노동권 투쟁

  • 양유진
일‘해’고 싶어요. 
어느 중증발달장애인의 외침이 있다. 삐뚤삐뚤한 글씨, 맞춤법 틀린 일‘해’고 싶다는 말. 이 말은 어디서, 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일까?

충무로에 있는 남산스퀘어빌딩 11층,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 수많은 장애인당사자와 장애인의 가족들 그리고 연대하는 이들이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개 쟁취!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제외조항 삭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개혁! 이다.
 
이처럼 이 농성 투쟁의 이유는 한마디로 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받고, 인정받기 위함에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장애인 중 61.5퍼센트가 비경제활동인구이다. 또 노동을 하더라도 중증장애인은 최저임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장애인은 아무리 일을 해도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는 최저임금법 제7조에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시켜도 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2014년에 개정 권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이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의무고용제로는 안 된다

일반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그나마 이를 보완한다. 현재 국가·지방자치단체와 상시근로자 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에 대해 의무고용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어겼을 시에는 분담금을 납부해야한다. 그리고 의무고용률 이상을 고용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규모에 상관없이 초과인원에 대해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12월 기준 30대 대기업 가운데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킨 곳은 단 3곳에 불과하다. 장애인 의무고용률(2016년 기준 공공기관 3.2퍼센트, 민간 2.7퍼센트)을 위반하면 지난해 기준 미달인원 1인당 최소 매달 75만 7000원의 부담금을 내야한다. 이용득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 공공부문 전체(부처, 교육청, 지자체, 공공기관) 1203개 기관 중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충족하지 못해서 부담금을 납부한 기관이 260개(21.6퍼센트)였고, 납부한 부담금 총액은 184억 6100만 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반드시 지키기보다 고용분담금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 유리한가?’ 라는 의문이 든다. 이에 더해 또 하나의 큰 모순이 있다. 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고용을 위해 일해야 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지 않을시 사업장에서 내는 분담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이다. 
 
 

시혜와 동정을 넘어

우리 사회는 자본가들에게 충분한 잉여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노동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을 비롯해 효율성과 생산성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노동이란 가치와 동떨어진 사람들로 취급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원되고 있는 자활사업과 장애인에게 지원되는 직업재활 등과 같은 직업 훈련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장애가 있거나 가난한 사람들, 즉 자본에게 이윤을 만들어주기 어려운 사람들이 하는 노동은 기본적으로 시혜적인 관점에서 제공되는 복지의 차원으로 취급된다. 결국 이들은 노동이 아닌 복지 차원에서 ‘훈련 받는다’는 명목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 이것이 장애인들이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시혜의 논리에 맞서, 복지 범주 안에서의 일자리가 아닌 노동의 범주 안에서의 일자리를 요구하는 게 중증장애인 노동권 투쟁의 출발이다. 복지가 필요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충분하고 안정적인 서비스가 지원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수준의 임금과 환경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하고, 일자리의 형태에서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노동권 투쟁은 기존의 ‘노동’의 개념에 균열을 내고, 노동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투쟁이다. 서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한 사회가 아니라, 서로 잘 의존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투쟁이다. 

아직 더 고민하고, 더 토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이 토론을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생산하는 노동인가? ‘누구’를 위한 노동인가?” 이 질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답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농성장 벽면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을 울리는 문구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도 노동자다, 김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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