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는글
  • 2018/10 제45호

죽고 싶지만 여는 글은 쓰고 싶어

  • 이준혁
서점에 들렀다. 베스트셀러 칸을 둘러봤다. 우리가 잘 아는 푸르딩딩하고 멍-하게 생긴 해달부터 꿀 퍼먹는 곰 인형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들의 대통령도 보인다. 책 제목들이 다 비슷비슷하다. 《느리게 살아도 괜찮아》,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지금 이대로의 너로 충분해》 … 바쁘고 불쌍하게 사는 인간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이제 상어 몇 마리만 나오면 되겠다 싶었다. 《진짜 너 자신을 찾을 수 있어 뚜루루뚜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 칸엔 동물 친구들의 위로 대신 자기계발서가 넘쳐났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나 알려주며, ‘20대는 공부에도 미치’고 ‘재테크에도 미치’라고들 했다. 조금 지나자 청년들이 호소했다. 미치라 해서 미치도록 살았는데 미래가 안 보인다며.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어른들’은 답했다. 미치겠네. 

몇 년이 지났다. ‘힐링’이 대세가 되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며 잠시 쉬라고들 했다. 적어도 ‘노오오오력’은 강조하지 않으니 뭔가 바뀐 것도 같았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여전히 불티나게 팔렸다. 스펙 쌓기 힘드니 잠시 쉬다 가라는 ‘힐링’은 ‘자기계발’의 동전의 양면이었다.

청년들은 그 책들을 열심히 읽었고 내용대로 정말 충실하게 살았다. 그리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어엿하지는 않고 그냥 먹고 살 수는 있는 일자리에 앉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죽어라 노력했던가. 알바다 스펙 쌓기다 하면서 분초 단위로 열심히 자신을 갈아 넣었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내 집 마련은 선택된 이들의 특권이 된지 오래다. 기껏 받은 월급의 태반이 학자금 대출, 월세나 전세 자금 대출로 빠져나간다.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죽어라 노력했건만, 지금의 나는 잘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우리의 동물 친구들이 말하기를, “지금의 너 자신을 사랑하면 돼.”

이런 유행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따뜻한 위로는 당장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자존감 문제로 돌려버리니까. 바꿔야 하는 건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청년들이 ‘초인’이 되어야 하는 사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진짜 비극은 여기에 있다. 청년들이 보기에 정치니, 사회운동이니, 하다못해 내 직장이라도 바꿀 수 있다는 노동조합은 너무도 먼 이야기다. 때로는 삶에 지친 청년들 스스로가 이런 이야기를 거부하곤 한다. 가뜩이나 머리 아픈데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주장에 귀 기울일 여유는 없다는 이유로.

‘내 곁의 생각보다 강한 힘’이 노동조합이, 사회운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단히 알리는 이들의 노고를, 이들의 활동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을, 나는 잘 안다. 다만 갈 데 모를 허전함에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나는 4캔 만원 편의점 캔 맥주를 손에 쥔 채 책 한 권을 펼쳤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었다는, 많은 청년의 눈물을 빼놓았다던 한 청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문득 생각해본다. 사회운동이, 그리고 《오늘보다》가 흔한 베스트셀러와 다른 방식으로 위로와 공감의 목소리를 전했으면 좋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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