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세계
  • 2019/02/제49호

이주와 난민의 시대 평등한 권리를 향한 연대로

  • 정영섭

범람하는 인종주의, 눈치 보는 정부

 
이주민들에게 2018년은 불안과 실망의 한 해였다. 500여 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를 둘러싸고 오해와 편견, 비합리, 인종주의에 기반한 격한 반대 정서가 표출되었다. 정부는 제대로 된 처우는커녕 출도 제한 조치를 하거나 예멘을 무비자 입국 국가에서 제외시키는 등 눈치만 보기 바빴다.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불안감을 키워 가짜뉴스와 이슬람포비아가 퍼지게 만들었다. 결국 정부는 신청자 중 2명만 난민으로 인정하는 초라한 결과를 낳았다. 생존의 위기에 처한 난민 신청자들은 몇몇 단체의 지원과 극히 일부가 3D업종에 일하는 것으로 버텨내야만 했다. 심지어 국회에서는 정치인들이 앞 다퉈 난민 인정을 어렵게 하거나 아예 난민법을 폐지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이주노동자들의 문제 역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사업주에 종속된 사실 상의 강제 근로라 비판한 고용허가제 문제를 사회적으로 고발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상반기에는 각 지역과 노동청을 순회하며 문제를 알려냈고 하반기에는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겨우 하나 내놓은 것도 사업장 이동이 가능한 사유를 몇 가지 추가하는 제한적 조치에 그쳤다.
 
 
이 와중에 미등록 체류자가 단속 과정에서 또 다시 사망하기도 했다. 미등록 체류자 문제를 단속추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지난 수십 년의 역사가 증명한다. 현재 미등록 체류자는 전체 이주민 230만 명 중 35만을 넘어서고 있는데, 대부분 단기 체류 자격밖에 주어지지 않아 체류 기간을 어쩔 수 없이 초과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단속 추방보다는 합법화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단속 강화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인천의 건설 현장에서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 씨가 추락, 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강제 단속을 계속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난민 문제로 한국 정부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무수한 지적과 권고를 받았다. 그 대부분은 사업장 변경 제한을 없애고, 폭력적인 단속을 멈추며, 노동 조건 및 사회보장에서의 차별을 없애며,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법 제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형식적인 답변이나 자화자찬으로 일관했을 뿐, 실질적인 이행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이 요동치는 세계

 
이주민, 난민 혐오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속에 빈부격차의 심화, 미래에 대한 불안, 노동자·민중 운동의 쇠퇴는 극우세력 성장의 토양이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극우세력은 체제의 실패를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이들의 입국을 허락한 세계화를 공격하며 증오를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설치하려 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빈곤과 치안 부재에서 탈출하려는 수천의 이주민들의 ‘캐러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 법에는 입국 경로를 불문하고 난민 신청이 가능하며 미국 내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를 무시하고 캐러밴 행렬을 범죄자로 매도하고 있다. 또 트럼프는 이들을 막으려는 장벽 건설 예산 57억 달러를 제출했다 의회의 거부에 부딪혀 연방정부가 잠시 폐쇄되기도 했다. 물론 트럼프에 반대하는 민주당도 이주민 포용보다는 더 적은 비용으로 이들을 막자는 주장을 펼칠 따름이다. 예컨대 스마트 장비나 감시 인력 확충 등이다. 장벽 예산 자체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으나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갈등은 다시 터질 공산이 크다.
 
 
유럽은 더 복잡하다. 가장 큰 문제는 지중해를 통해 들어오는 난민 수용 여부다. 2015년 시리아로부터 난민이 대량 유입된 후 각국의 난민 통제가 강화되었다. 이제는 지중해에 표류하는 난민 선박을 구조하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탈리아는 난민 구조선의 입항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의 난민 수용센터까지 폐쇄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극우정당 ‘북부동맹’ 출신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5월에 열릴 유럽의회 총선에서 반 EU, 반 난민을 기치로 극우정당 간의 연대를 호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대표적인 난민 포용 국가였던 독일도 난민 신청 대기 기간을 줄여 송환을 촉진하고 지중해 난민 구호에서 발을 빼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에 2018년 난민 신청 건수가 18만 5000건으로 2015년의 89만 건에 비해 80퍼센트나 감소했고, 추방된 난민 신청자는 2만 명으로 이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영국, 프랑스에서도 상황은 비슷하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범죄가 증가하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운동을 확대해야

 
이렇게 보면 한국도 세계적 흐름에서 크게 빗겨나지는 않은 셈이다. 극우 성향 정치인들이 난민 반대 정서를 등에 업고 가능하지도 않은 난민법 폐지나 난민 인정을 까다롭게 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고, 틈만 나면 이를 선동하고 있다. 민간 영역에서 이들의 파트너가 있는데, 바로 이주와 난민을 반대하는 ‘난민대책국민행동’과 각종 보수기독교 단체들이다. ‘국민행동’은 작년 아홉 차례에 걸쳐서 반 난민, 난민법 폐지, 미등록체류자 추방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 참가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면 오히려 혐오나 배제, 배척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왜곡된 정보, 극단적 논리, 무슬림에 대한 인종주의 등이 결합되어 이주민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표시되기도 한다. 그 근저에는 체제의 실패, 경제의 위기적 상황이 놓여 있다. 위기의 원인을 단순하게 외부의 적을 설정하여 호도하거나, 자원과 복지를 놓고 다투는 대상으로 왜곡되게 선동한다. 경제상황이 더 안 좋아질수록 이러한 근거 없는 공격은 더 힘이 세질 것이다.
 

때문에 우선적인 과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흐름에 맞서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안전판 격으로 가장 먼저 해고되기도 했으며, 당시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내국인으로 대체하면 120만 원을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되지도 않는 정책을 폈다. 올해에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자본가 단체는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라는 공세를 지속할 것이고, 사업주들은 숙소비와 식비 등을 임금에서 더 많이 떼는 등 이주노동자 임금을 실질적으로 삭감하려 들 것이다. 각 지역과 현장에서 이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주노동자를 옭죄는 제도적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특히 강제 근로의 주범이자 이주노동자 개인의 협상력을 박탈하여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사업장 이동 제한은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 이는 임금, 노동조건 문제와 더불어 이주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력한 이슈이기도 하다.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단속 추방에 대해서도 그 야만성을 꾸준히 폭로하며 모든 이주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난민법 개악을 막고 난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 역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주노동자 운동을 기반으로 노동자운동이 점점 반인종주의 운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조합원 교육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곁의 이주노동자, 난민들과 연대하고 노동자운동이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인식과 활동을 펼치는 것의 기본이 될 것이다. 또 이는 마땅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 확대와 주체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격차 축소와 단결과 연대 강화로 나아가는 노동자운동을 이주민·난민과의 연대에서부터 시작하자.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태그